인과응보가 있기를.. 뿌린대로 거두기를.. : 네이트판

안녕하세요.
이 방이 가장 활성화되서 방탈이지만 작성합니다.
제 이야기는 2017년도에 한번 썼다가 변호사님께서 지우라해서 지웠는데 계속 유지하지 못한게 아쉬워서 다시 씁니다.

저는 20대 이제 후반에 들어선 여자입니다.
저는 4살때부터 12살때까지 고모부한테 친족 성폭력, 성추행을 당한 사람입니다.

어렸을 땐 그게 뭔지 몰랐지만 굉장히 싫고 아팠지만 그 당시 어린 마음에 나를 이뻐하는 고모부가 실망하는게 슬퍼하는게 싫어서 시키는대로 있고 엄마한테 말하지 말라고 우리끼리의 약속이라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약속을 지켰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가며 부끄러움이 생겨 싫다고 거부하니 성추행으로 이어졌지요..

저는 그게 범죄인지도 모르고 아무도 성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가르쳐 주는 이가 없었기에 이뻐해주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고학년때 저를 잘 챙겨주고 이뻐해주는 삼촌은 단 둘이 있을 때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상함을 느껴 멀리 했지요.. 그게 초등학교 5학년때이고 그 뒤로는 더 이상 그런 접촉은 없었습니다.

처음 '내가 당한게 범죄였구나'하고 인식했을 때는 중학교 1학년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본 날이었어요.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해요. 이나영이 사촌오빠한테 몹쓸 짓을 당하는데 엄마는 이나영 탓을 하며 도와주지도 위로해주지도 않죠..
그날 그 영화를 보다 제 기억이 스치듯 지나가며..인생을 살면서 가장 서럽게 운 날이에요..
다 알게되었지만...부모님께 말 할 자신은 없고 어찌 해야할 지를 몰라 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어요...

하지만 저는 이미 다 엎질러진 물이고 나만 묻고 살면 우리 가족은 행복한데.. 부모님은 안 슬플텐데..하고 묻고 살아가기로 마음 먹었어요.

그 후로도 가족 모임이 생겨 참석하면 고모부는 어른들한테는 우리 이쁜 ㅇㅇ이(제 이름), ㅇㅇ이 고모부 옆에 앉아야지! 이러며 저를 갖고 놀려했어요(항상 이러면 부모님 뒤나 옆으로 도망가 있었어요.)

또래 친척 아이들이 마당이나 방으로 모여 놀 때 저를 따라와서 친한 척 근황을 물으며 팔뚝을 쓰담는 등 제 옆에 있으려고 기회만 노리는게 너무 많았습니다.(물론 제 생각이지만 뭔가를 어찌 더 하려고 하는 거 같다기보단 자신은 아무 잘 못을 하지 않았고 너는 약자다 라는걸 즐기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저는 그럴 때마다 부모님쪽으로 피해 도망가거나 아이들 옆에 딱 붙어서 어색하게 웃으며 답하는게 다 였어요...
사실 이때는 예민한 중학생 시절이었고, 부모님이 아는게 너무 무서웠어요.

시간은 흘러 고등학생이 되었고 고모부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행사에 참석하지 않았고 저도 묻고 살며 잘 지내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며 장례식장에서 몇년만에 만나게 되었어요.

역시나 제게 친한 척 이뻐하는 척 다정하게 부르며 옆에 오고 말을 걸더라구요.

진짜 뼈 속까지 소름이 돋으며,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안 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고모부 옆에 가서 "사람은 어렸을 때 당한 충격적인 일은 잊지 못한대요. 제게 왜 그러셨어요?" 말을 내뱉자 마자 오열하듯 눈물이 나더라구요.

당황한 고모부는 저를 안아 달래려 하였지만 격렬하게 거부하니까 힘으로 안았는데 사람들이 다 쳐다보니까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제게 오빠)에게 저를 넘기고 황급히 나가더라구요.

울다말고 따라나가서 소리지르며 화내고 속에 있던 말 다 꺼내서 하니 고모부는 그걸 기억하고 있었냐고 미안하다고 내가 죽일 놈이라고 스스로 뺨치며 사죄했어요. 그리고 다신 제 근처로 안 오겠다고 약속했죠.

이때까지도 저는 부모님이 아는게 싫었고, 사과도 받았기에 이제 다 묻고 살 수 있다 생각했어요.

장례도 끝나고 다시 잘 지내듯 하다가 그 고모부 아들이 결혼해서 참석했는데 그 때 제 근처도 인사도 아는 척도 안 하기에 이제 살 것 같다 생각했어요.

저 오빠가 결혼을 2014년 1월 11일에 했으니까 제가 22살이었네요.
그 아내분 보라고 일자 일부러 쓰는 거예요. 알려주고 싶거든요.

그로부터 2년 후인 2016년 6월 쯤 그 고모부가 환갑이라고 고모가 가족여행 형제들끼리 가자고 돈 내라 했고 선물로 금반지 5돈해주자고 큰 아빠가 추진했고
그걸 듣는 저는 심장이 터질듯 뛰고 맥박이 너무 빨라 터져버릴 거 같아서 엄마한테 말했어요.

제가 생각했던 우리 엄마는 연하디 연하고 약하다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구요.
엄마는 강했어요. 그 다음 날 제 손잡고 경찰서 가서 신고했어요.

경찰분들은 너무 오래된 이야기고 증거도 없어서 안 될 거다 안타까워 하셨지만 실망한 제게 그 새끼가 경찰서가며 심장 쫄리는 것만으로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복수다 하셨어요.

뒤늦게 말한 저를 탓하지도 어렸을 때 티 조차 내지 않고 참았던 저를 탓하지도 않았어요..

신고 후 공덕 지날때 보던 큰 경찰서에 가서 녹화진술도 해보고, 계속 아니라는 그 새끼를 형사님께서 구슬려서 같이 거짓말 탐지기도 했어요.

거짓말탐지기 진짜 같은 질문에 계속 동일한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과호흡이 와서 숨을 못 쉬더라구요 제가.

그 새끼는 판정불가, 저는 진실이 나왔어요.

제 담당 형사님은 저희 엄마만 따로 불러서 오래된 사건이라 많이 힘들다. 사실 이대로 가다간 무고죄로 역 고소 당할 수 있는데 진행하겠냐 물었어요.
저희 엄마가 하겠다하니 검찰로 기소되었어요.

재판 출석장이 온 그날, 고모와 고모부는 절 찾아오셨어요.
아빠가 두 사람을 데리고 가까운 호프집으로 갔고, 저는 고민하다 뒤 따라 가보니 이미 고모부는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었고,(고소 취하해달라고 아빠한테 사죄하며 맥주병으로 머리치는 자해를 했대요.)
저는 눈물이 나 엉엉 우니 아빠가 절 데리고 들어가려는거 안되겠다고 돌아가보니 저 보란듯이 깨진 머리로 전봇대에 머리 박으며 사과하더라구요.
제가 울면서 미안하면 가서 벌을 받으라고 내가 억울해서 못 살겠다고 벌 받고 나오면 용서해주겠다고 하니 아무 말 없이 고갤 떨구더라구요.

더 사과하라고 머리 더 박으라고 내가 다 찍을거라고 하며 진짜 찍었어요.
형사님이 할머니장례식장 사과만 있어도 큰 증거로 벌 할 수 있을텐데하며 굉장히 아쉬워 했었거든요.

마지막엔 저희집앞에 개천같이 산책로가 있는데 다리 밑으로 죽어야한다며 뛰어서 쓰러졌어요.

아빠가 신고한 구급차에 실려갔고, 저는 너무 울어서 머리 아파서 집에 갔어요.

참 웃긴게 나쁜 사람은 끝까지 나쁘더라구요.
저리 사과하고 머리 터져 갔으면서 재판일정 미루고 사설 변호사 선임해서 무죄주장하더라구요.

그 덕분에 저는 증인으로 법정에도 출석했어요.
제가 당한 일을 시간대로 설명하고 막말하는 사설 변호사도 제 말빨로 이겼어요.

정말 말같지도 않은 질문을 했거든요.
그런 추행을 당했을때 고모가 지나갈 때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냐고 묻더라구요.

끝까지 무죄 주장하기에 제 국선 변호사님께서 영상 증거 제출해서 고모도 증인와서 남편 믿고 싶다 말하고가고,

최종 판결은 실형 1년 나왔어요.(앞 성폭력 등 사건은 공소시효 만료로 성추행 단 1건으로 재판했어요.)

그것도 억울하다고 2심 고등법원갔는데 변동없이 적용되었어요.

사실 되게 지금 담담하게 쓰는데 저 지난 2년간 심적으로 너무 아파서 상담 다니고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근데 진짜 억울해서 못 죽겠더라구요. 저 새끼는 1년 뒤 다시 지 아들부부랑 손자, 손녀랑 오순도순 살텐데 싶어서요.

그 결혼한 아들 듣기로는 아들, 딸 낳아서 산다나봐요.
며느리는 모르고 아들은 저 사건을 알죠.
아마 며느리는 아무것도 몰라서 어여쁜 딸을 할아버지에게 안겨보라고 넘겨주겠지만 아들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얼른 데려가겠죠.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며느리가 알았으면 좋겠어서 썻어요.
뭐 못 알아챈다면 유감이지만요.
근데 남편이 할아버지가 딸 곁에 있는걸 싫어하는 티를 내면 눈치채줘요.
결혼 후 1년간 시아버지의 부재가 있었다면 의심하세요.
마지막으로 딸 잘 지켜요. 그 할아버지도 아닌 늙은이한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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