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7년 연애 끝 그리고 사필귀정
- 썰 모음
- 2021. 5. 27.

사필귀정을 믿는다. 반드시 너는 댓가를 치르리라고 나는 믿는다. 너와 나는 7년을 함께 했다.
어려운 형편 탓에 비싼 레스토랑 한 번 못가고 늘 저렴한 학생식당 분식메뉴만 먹었어도우린 즐거웠다.
두유 대리점을 하는 옆집에서 얻어온 두유 두 팩과
남은 사과 두 조각을 비닐백에 담아나왔던 너
좋은 걸 주고싶은데 미안하다며
너는 사과조각을 내 입에 넣었었다.
사람들은 네 옷을 보고 비웃었다. 너는 코디따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매일을 전쟁처럼 살았다. 나도 어려웠지만
그런 너를 보는게 힘들었던 나는과외뛰고 알바뛰어 받은 돈으로
네 옷을 사 입혔다.
비싼 옷은 아니었지만 너는 행복해했다.
그런 너를 보며 나도
행복했다.
그런 네가 손에 꼽히는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한 후
너는 조금씩 변했다. 선물을 사주겠다며 백화점에 나를 데리고 갔지만
나는 차마 무언가를 고를 수도 없었다.
네 고생을, 네 시간을, 네 월급을 함부로 쓸 수 없었다.그런데 너는 말했다.
나같은 사람은 돈 쓰는 재미로라도 살아야 하는 사람이야. 내가 얼마나 빡세게 사는 줄 알아? 나는 돈쓰는 재미로 살거야. 너처럼은 안 살아 나는
사람은 누구나 다르고 가치관도 삶의 기준도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진보가 있는가 하면 보수도 있고
돈이 중요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이 중요한 사람도 있다.
누구도 잘못된거라 말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취향이 다를 수 있다고,
기준이 다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너는 분명 나와 비슷한 종류의 사람이었고,
그렇게 수 년을 함께 해왔지만
지금의 넌 내가 알던 너와
너무도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되었다.
결국 마지막이 되던날 밤 너
는 말했다.
나랑 급을 맞출려면 넌 최소한 공무원이라도 해라. 싫으면 연락하지 마라.
네가 입사시험에 통과하고 고모 삼촌 등 친지들까지 모두 모였던 잔칫날
너는 말했었지
날 낳은건 엄마지만 사회적으로 길러준건 바로 너야 그럴리 없지만 만약에 내가 널 버린다면 난 부모를 버린 패륜아야 아니 사람도 아니다 금수만도 못 해.. 앞으로 너한테 받은 거 갚으면서 살게고마워....
잠도 못자는 바쁜 나날 속에서도 네 자소서를 쓰기위해 밤을 지새운 것도
바로 나였다.
누가 협박을 해서도, 시켜서도 아니다.
나는 나 스스로 너를 돕고자했고
그 오랜 시간 너를 위해 살았다.
댓가를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나의 청춘을 누군가에게 내어바쳤다.
헤어진 것이 억울한 게 아니라
내가 사람을 이렇게 볼 줄 몰랐나..
이렇게 바보였나 하는 자괴감이 나를 갉아먹었다.
내 말이 아니라, 네가 한 말 그대로 금수만도 못한 너에게 내 청춘을 내어바쳤다는 것.
그것도 스스로.
그것이 고통이었다.
너무나 진부해서 입에 올리기도 부끄럽다.
유치하고 구차하다.
얼마 지나지않아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예쁘고 돈 잘 버는 여자와 너는 결혼했고
보란듯이 전체공개로 웨
딩사진을 여러계정 SNS에 올리는 걸 보며
나는 속울음을 울었다.
그 누구와도 자본 일이 없었다. 너 외에는.
누구와도 몸 섞을 일 없던 나였다.
그런 내게 자궁경부암이 찾아왔다.
가족에게도 알릴 수 없었다.
보호자도 없이 혼자 입원하고 혼자 수술하고 혼자 치료받았다.
사무치는 배신감과 처절한 고통속에서
나는 혼자 발버둥쳤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산다.
사는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비난받아선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 하면 좋은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 같은 것들도
분명 존재한다고 믿는다.
남녀가 만날 수 있고 정을 나눌 수 있고 헤어질 수도 있다.
모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너는 내게지키지도 못할 너무많은 약속을 했고
원하지 않는 큰 병을 주었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떠났다.
나는 아직도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넌 잘못한 것이 없다는 마음과넌 죽일놈의 새끼라는 마음.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든 일은 정도대로 흐를 것이란 점이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끔 네 소식을 듣는다.
좋은 이야기들과 나쁜 이야기들이 섞여 들려온다.
우리의 삶은 너무도 길기에 기대된다.
믿는다 다시 한 번, 사필귀정.
그것이 아니면 내 시간과 애정과 건강은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단 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