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하며 태움으로 얻었던 마음가짐 : 네이트판

저는 경기권 3차 대학병원에서 24살 첫 신규부터 버티며 34살 10년을 꽉 채워 일 하다가 사직했었어요.

신규때는 태움이라는게 지금처럼 언론화 되지도 않았었고 그에 당연히 지금보다 더 심했죠. 수쌤까지 가담하며 물품 숨기기, 퇴근 안시키기, 보조사 일까지 떠넘기기, 인계 밀리기 등은 물론 신체적 가해도 있었지만 찍소리도 못 냈었고, 속으로 삭히고 눈물로 내보내고 정말 너무 힘들었었어요.

그러면서도 나는 나중에 제발 저런 프리셉터가 되지 않아야지, 내가 수간이 되면 이런 내 파트에는 이런 태움이 없게 만들어야지 하며 버텼어요.

하지만 제가 프리셉터가 된 순간 신규의 잘못을 나무라다가 신규가 울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 문득 제 신규 시절 모습이 생각이 나서 정신이 확 들더라구요. 내가 신규였을 때의 내 프리셉터와 지금 나의 모습이 똑같구나.

그 때 생각했던 내 목표들은 어디갔고 내가 어느새 그렇게 욕하던 프리셉터의 모습을 따라가고 있는건지 내가 지금 신규한테 뭘 하고 있는건지... 물론 잘못은 나무라는게 맞지만 신규를 보니 맨날 퇴근하고 울던 과거의 제 생각도 나서인지 근무하면서도 약간 뒤숭숭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신규도 어이없었겠지만 결국엔 퇴근하면서 탈의실에서 신규 붙잡고 미안하다고 같이 울었어요 ㅋㅋㅋㅋ
그 뒤로는 신규랑 사적으로도 잘 놀러 다니고 아직까지도 같이 만나서 노는 언니 동생 됐네요ㅋㅋㅋ

그 때 얘기하면 그때는 자기도 어렸었고 맨날 업무 강도에 쌓이는 스트레스에 프셉쌤 아닌데도 들려오는 참견아닌 참견 꼽사리 쌓이고 쌓여서 결국 그 때 제 앞에서 울었던거라며 쪽팔리다구 ㅋㅋ.. 같이 울어서 당황했는데 너무 마음 편했다구..

근데 정말 그 날 퇴근하고 집에서 혼자 멍 때리는데 참 기분 그렇더라구요. 사람이란게 원래 이렇게 되는 건 아닐텐데 나도 오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과거의 내가 당했던 일들을 그대로 신규들한테 하고 있었을까? 하면서 괴물같고..

그 후로는 근무하면서 신규들이 당황하고 어려워하는건 눈치껏 가서 알려주고 도와주고 지켜보고 그냥 제 선에서는 챙겨줘야지 하면서 지냈어요. 너무 오냐오냐도 아니었지만, 나중에는 그 신규들이 프리셉터를 떠나 독립했을 때 고맙다고 예의상으로 하는 말 한마디도 가슴 깊이 들어왔고 이 친구들이 나중에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나와 같은 목표를 가져줬으면 싶더라구요 ㅋㅋ




그러고 저는 다른 파트로 로테이션이 돼 다른 병동으로 갔었어요. 근데 거기서는 태움이 정말.. 진짜 심하더라구요.. 제가 당했던 것처럼.. 이 당시에는 태움도 점점 언론화 되는 그런 때였는데..

그래도 저는 휩쓸리기 싫고 그런 사람 되기 싫어 그냥 저라도 나라도 잘해주자 나라도 동아줄이 되어주자 싶은 마음에 전 챙겨주고 다독여주고 했었거든요.

그랬더니 몇 주 지나고 그 병동 수쌤이 저한테 그러더라구요. 너는 왜 기존 애들이랑 안 어울리고 신규랑 어울리려고 하냐, 신규 애들이 원래 아는 애들이냐 후배냐 친척이라도 있냐, 왜 너만 돋보이려고 하냐 ㅋㅋㅋ..

정말 그 말을 듣고는 어이가 없고 내가 비정상인건가 싶고 그냥 그 자리에서는 뭐라 못 하고 아 그냥 제 신규때가 생각나서요 하고 마무리 지었지만, 그 며칠뒤에는 점심시간에 신규 돕느라 같이 점심을 못 먹어서 스테이션 뒤에서 둘이 컵라면 먹는데 저랑 2년 정도 아래로 차이난중간연차 한 명이 신규한테 묻더라고요.

너 정말 ㅇㅇ쌤이랑 아는 사이 아니야?ㅋㅋ 넌 좋겠다 신규 편하게 지내서~ 나는 맨날 죽고싶다했는데~ ㅇㅇ쌤은 왜 얘네를 돕느라 밥을 안드세요~ 신규때나 그래야지
이러니 스테이션에 있던 수쌤이며 다른 간호사들도 거들고 신규랑 저랑 컵라면 먹지도 못하고 ㅋㅋㅋ..

그냥 이 말을 듣고는 진절머리가 나더라구요.
그 날 퇴근하고 당장 다른 병원 알아보고 그 다음주에 사직서 제출했습니다.

저는 사직 후 서울 2차 병원에 들어왔고요, 제가 사직하고 얼마 뒤 그 신규도 사직하고 다른 병원 찾아 들어갔대요. 말을 들어보니 제가 사직 후 중간연차들이 계속 너가 ㅇㅇ쌤 잡아먹었네 너 때문에 우리 인력 딸리네 뭐네 계속 괴롭혔더라고요. 다행히 다른 병원에서는 사람들 잘 만나 잘 지내고




저는 2차 병원 병동에서 계속 일 하고 있고 사람들 참 좋아요. 원장님들도 좋고 다른 파트 분들도 다 좋고. 요새 코로나 때문에 병원들이 분위기가 다 날카로운데 저희는 평소에는 덴탈마스크 꼈는데 요새는 대표원장님이 직접 사비로 n95 채워놔주셔서 하루에 하나씩 끼라고 하시지만.. 저희는 아까워서 이틀은 쓰고 버려요 ㅋㅋㅋ.. 요새 마스크값이 장난 아니잖아요 ㅋㅋㅋ

정말 관두길 정말 너무 완전 잘 했습니다.
사람들의 다른 면도 잘 알게 되었고 세상에 사람 참 종류 다양하다 싶음을 체감했고.

2차병원에서 오히려 대우 잘 받고 제 개인적인 여가시간 잘 보장받고 듀티도 의견반영 90%에 사람들도 좋고 신규가 들어와도 전처럼 그런 쓰레기들도 없고..

하나가 좋아 열이 좋아보이는건지 여긴 유독 환자분들 보호자분들도 정말 좋으신 분들이고 병원에서 큰 소리 한 번 난 적이 없네요.


태움으로 고생하는 신규 간호사분들
저는 끝까지 그러지 못 했지만 목소리 내셔도 괜찮습니다.
지금 뭐라고 쓰레기 뱉어대는 애들 나가면 아무것도 아니고 미래를 책임져줄 사람들도 아니에요.
세상엔 별 사람들이 다 있지만 그 중에 내 사람을 찾기만 하면 됩니다.
그냥 쓰레기구나 더럽다 하면서 지나가세요.
어딘가에서는 당신을 정말 기다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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