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 우리집에 놀러 온 시누부부 : 네이트판
- 썰 모음
- 2022. 7. 8.

남편 일 때문에 해외에 몇 년 째 나와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제대로 가지 못했는데 시누 부부가 이쪽으로 여행을 오겠다고 연락을 해왔어요.
2주 동안 온다고 해서 알겠다고 하고서 혹시 오셔서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나 하고 싶은 것 계시냐고 물어봤습니다.없다고 하면서 우리가 여기서 몇 년 있었으니 잘 알 거 아니냐고, 알아서 해달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난감했어요. 여기도 코로나 때문에 지난 2년 넘게 거의 집콕 수준이었고, 무작정 알아서 해달라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요. 시누가 살짝 공주병 같은 게 있어서 내가 멋대로 여행 일정 잡았다가 맘에 안 든다고 꼬투리 잡을까 봐 그것도 걱정됐구요.
그래서 남편한테 이야기 했더니 남편이 전화해서, 우리한테 아무런 말도 안 해주면 집에서만 2주 내내 있을 생각이냐, 체면 차리지 말고 뭔가 대충이라도 이야기를 해달라고 시누에게 말했습니다.
프랑스 파리,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태리 베니스, 크로아티아.....(저희가 유럽에 있습니다)일단 저 네 곳을 말하더니 그리스 산토리니도 추가하더군요.
문제는 저렇게 가려면 2주로는 모자란다는 겁니다. 더군다나 제 남편은 직장도 다녀야 하구요. 2주 휴가를 낼 수도 있지만 올해 우리도 한국에 가려고 하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어요.
남편은 누나 부부 둘이서 저렇게 돌아다니게 하라고, 오히려 저게 더 낫다고 하는데 시누는 우리랑 같이 다니려고 하더라고요. 말도 안 통하는데 자기들 둘이서 낯선 곳에 여행 다니기 싫다고요.
아무튼 일정도 너무 빡빡하고 저렇게는 무리라고 했더니 너네 외국 나가고 우리가 처음 가는 건데 2주 휴가도 못 내냐고 합니다.
남편이 딱 잘라서 못 낸다고 하니 섭섭하다고 하네요. 그러더니 결국 그럼 프랑스 파리랑 이태리 베니스, 두 곳은 꼭 가봐야 겠다고 해서 알겠다고 했습니다.
각각 2박 3일 잡아서 호텔이랑 항공권 끊었습니다. 시누 부부 왔고요.근데 시누 부부, 돈을 전혀 안 씁니다.식당을 가도, 택시를 타도, 본인들 지갑이 열릴 줄을 몰라요.
물론 우리가 대접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 걸 압니다. 근데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요?호텔이랑 항공권은 우리가 대접하는 셈치고 부담했는데, 그럼 최소한 밥 한 끼 정도는 시누부부가 낼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여행 가서도 너무 덥다, 호텔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 안 하는 거 같다, 생각보다 음식이 맛없다, 계속 불평만 하는데, 이럴 거면 왜 왔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베니스 가서는 해리스 바(007에 나온 바라고 합니다)에 가서 두 분이서 엄청 마셨는데 또 우리 부담... 거기 상당히 비쌌어요. 곤돌라도 우리가 돈 내고, 저녁도 우리가 내고, 하다 못해 길거리 젤라또도 우리가 내야 했어요.
남편은 내내 아무 말 없었는데, 집에 돌아와서는 시누에게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쓴 경비가 이러이러하니, 누나가 낼 절반은 이정도다, 하고 영수증 들이밀었습니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우리 남편, 좀 호구 스탈이거든요. 웬만해선 그냥 우리가 좀 더 쓰고 말지, 라는 성격인데 남편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시누가 뒤집어졌습니다.먼 곳에서 하나뿐인 누나가 처음 놀러왔는데 이렇게 남 대하듯 하느냐면서요.
남편은 우리가 열 번 사면 누나가 한 번은 낼 줄 알았다, 근데 가만 보니 우리를 무슨 ATM 으로 아는 거 같다.
호텔 예약도, 비행기 예약도 이 사람(저)이 다 하고, 여행 일정도 다 짜고, 집에서 이 사람이 힘들게 밥 하면 누나가 되어서 설거지 하겠다고 빈 말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무슨 상전이냐, 밥 먹자마자 소파에 앉아 텔레비젼이나 보고, 과일 깎아라, 커피 타 와라, 내 집사람이 누나 하녀인 줄 아느냐고.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남편이 다 해줬어요.솔직히 전 2주 있다가 갈 거니까 그냥 꾹 참자, 하고 삼키고 있었거든요.
시누는 섭섭하다고 울고, 남편은 한국에서 외국에 놀러온 게 무슨 벼슬이냐고 씩씩대고, 전 안절부절, 시누 남편(재혼한 분인데 솔직히 두어 번 본 게 전부)은 시누 달래느라 정신 없고....
결국 여행 마지막 날에 싸움으로 끝내고 시누 부부는 귀국했습니다.남편은 계좌이체 꼭 하라고 마지막까지 모질게 말했고요.
속시원한 것도 있는데, 마음에 걸리기도 하네요.한국가서 얼굴 봐야 하는데...
그래도 남편이 이뻐서 좋아하는 반찬 많이 해줬습니다.

